
게임과 관련된 글이나 영상을 보신 경험이 있으시다면,
한 번 쯤은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하는 게임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신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소액 결제, 사행성 조장, DLC 유료화 등의 단어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쁜 게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대체로 상업성 추구와 연결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처럼 "상업성을 추구하는 게임"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것에 비해,
"대중화를 추구하는 게임"을 비판하는 내용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비판은 커녕, "대중성"이라는 단어는
대중친화적인 게임,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과 같이, 항상 긍정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왔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입니다.
게임이 대중화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이라는 문화를 알릴 수 있게 되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누군가와 함께 열광할 수 있게 되며,
게임 산업이 부흥하여 소비자 입장에서도 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중화에 기여하는 '대중적인 게임'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에선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게임의 대중화에 의해 발생한 부정적인 영향들을 중심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정확히는 "게임의 대중화"로 인해 등장한
"대중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게임"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다뤄보고 싶습니다.
미묘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제 입장을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게임이 대중화되는 것은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훨씬 더 많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게임이라는 문화를 수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제가 가진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런 주제를 다뤄보려는 것은
게임들이 지나치게 대중성만을 좇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음에도, 이러한 문제들이 "게임을 대중화한다"라는 보기 좋은 명목 하에 가리워져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문제들은 고액의 DLC나, 엄청나게 낮은 뽑기 확률처럼 소비자에게 직접 피해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들은 아직은 심각하지 않은 수준입니다. 심지어 이런 문제들이 있었는지 모르셨을 분들도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게임의 대중화는 가속되어가고 있습니다. 게임이 주류 문화로 자리잡으면 자리잡을 수록, 이러한 문제들도 점점 더 심각해져 가리라고 생각해 이렇게 별도의 포스트로 다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니,
게임 좋아하는 힙스터가 혼자 하소연하는걸 들어준다고 생각하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제 1. 대중성 확보를 위한 무분별한 트랜드 편승

게임이 쏟아져 나오고 어느 때보다도 게임 제작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
"게임들이 예전만큼 참신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리곤 합니다.
왜일까요?
노스탤지어 때문에?
이미 너무 많은 컨텐츠들이 제작되어 더 시도해볼 혁신이 없어서?
기업에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보장하는 게임 컨텐츠를 선호해서?
전부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로 지나치게 대중성을 추구하는 게임들입니다.

대중은 항상 유행하는 것, 즉 트랜드를 추구합니다.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트랜드에 부합하는 게임을 제작해야 하고, 이는 일정 시기 동안 유사한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유사성"이라는 것이 꼭 게임 장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몽 어스가 크게 유행한 작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는 어몽 어스와 장르가 다르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디자인을 사용한 수 백 개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 중 많은 수의 게임이 높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디자인을 조금 참고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단순히 모방했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트랜드는 짧은 주기로 변하기 때문에, 트랜드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개발하기 보다는 속히 말하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식으로 개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평균적인 게임의 완성도는 하락하게 되고, 잘 만든 완성도 있는 게임들이 '트랜드 열풍'에 휩싸여 빛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이는 게임 시장 전반의 수준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트랜드에 민감한 저연령 소비자들이 다수 분포한 환경으로 변해가는 모바일 시장에선,
이미 소수를 제외하고는 게임들의 전반적인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랜드나 대중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독창적인 게임들이 많았던 초창기 모바일 게임 시장과 비교하면, 최근 플레이스토어에 즐비한 게임들은 (추억 보정을 감안하더라도) 완성도 측면에서나 독창성 측면에서나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여러분들도 받으셨던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모바일 시장보다 덜하긴 하지만, PC 시장도 조금씩 대중성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유사한 콘텐츠의 게임이 연달아 발매된다거나, 인기를 얻는 장르의 게임을 너도 나도 출시하는 현상은
PC 시장에서도, 심지어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보다 평균적인 게임의 완성도가 높고 트랜드가 변하는 주기가 긴 PC 시장의 특성상 다행히 게임 수준의 하향 평준화 현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게임 콘텐츠가 획일화 되어간다는 문제는 여전합니다. 배틀 그라운드의 성공 직후 연달아 출시된 배틀로얄 장르의 게임들이나, 하스스톤의 성공 이후 등장한 유사한 시스템의 카드 게임들 등 잘 살펴보면 사례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도 모바일 시장에 비해 높은 게임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과, 또 아직까지는 게임을 모방하더라도 어떻게든 유사 게임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긴 하지만, 모바일 게임이 그러했듯이 PC 게임 시장이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대중화되고 게임 트랜드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게 된다면 이러한 풍조가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제 2. 유저들의 실력차를 줄이고자 시도하는 기업들

Dynamic Difficulty Adjustment,
혹은 DDA는 말 그대로 플레이어의 수준에 맞게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DDA는 일반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최상의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사용되며, 예시로 싱글 플레이어 게임인 레지던트 이블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DDA를 기업들이 게임의 대중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DDA의 목적 중 하나가 다양한 플레이어가 모두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싱글플레이어 게임의 상황에 국한되는 이야기였습니다.
DDA는 이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 적용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업들이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지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2016년 유출된 문서에 의하면 EA라는 손꼽히는 거대 게임 기업조차 DDA를 자사의 멀티플레이어 게임들에 적용중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DDA를 적용했다는 점이 아닙니다.
1. 플레이어에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DDA를 사용했다.
2. 경쟁적 요소가 중요한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 DDA를 사용했다.
바로 이 두 가지 부분이 우리가 지적해야 할 점입니다.

그렇다면 EA는 왜 DDA를 사용했을까요?
사용자들의 경험을 위해서?
물론 이 역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의 내용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데,
EA는 멀티플레이어 FPS 게임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플레이어들의 히트박스*의 크기를 더 키우거나, 실력이 좋지 못한 플레이어들이 더 쉽게 적을 맞출 수 있도록 하는 등, 누군가에겐 부조리로 작용할 수 있는 장치들을 플레이어들에게 전혀 통보하지 않고 게임 내부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플레이어들이 게임플레이 시간을 늘리려는 데에 있다고 서술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즐겁게 게임하면 좋은 거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면 유저들에게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EA의 이러한 행위는 유저 입장에서도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고수들 사이에서 아무 것도 못한 채 계속 죽기만 하는 게임은, 분명 저같아도 금방 꺼버렸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게임을 하느니, 게임의 도움을 조금 받아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는 게임을 한다면 그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EA는 그런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실력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고자 DDA를 사용했고, 실제로 DDA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최대 다수의 유저가 최대한 오랫동안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즉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도 EA의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과연 게임을 위한 행위일까요?
공리주의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는 EA의 이러한 행위는
대중적 흥행, 혹은 대중이 가져다 주는 이윤에 눈이 멀어
게임이라는 매체의 문화적 가치를 훼손한 만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실력을 키워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해내거나, 열심히 게임을 연습해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을 때 재미를 느낍니다. 또 우리는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며 E스포츠에 열광하고, 친구와 점심 내기로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모두 "게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동등한 조건 하에 이루어진다"는 기초적인 전제 하에 성립 가능하며,
이 전제가 깨지는 순간 게임은 많은 것들을 잃게 됩니다. E스포츠는 더 이상 스포츠로써의 가치를 잃게 되고, 게임은 이전만큼의 성취감을 주지 못할 것이며, 무언가를 달성해내더라도 그게 본인이 이루어낸 것인지 DDA가 '떠먹여 준'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DDA라는 시스템이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에서는 제 이러한 주장마저도 부정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시스템 하에서 실력을 조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DDA는 모두에게 공정하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보면, 게임은 주사위를 굴려 1이 나오면 이기는 놀이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게임 속 다양성은 퇴색될 것이고, 플레이어들의 개개인의 특성, 능력, 스타일들이 무시되고 모두가 동일한 수준이 되는 것을 강요받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아직은 DDA를 사용하는 게임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DDA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EA의 사례처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다양한 대중들을 오랫동안 게임플레이를 하도록 만들 수 있는 DDA는 굉장히 매혹적이고, 앞으로 게임을 즐기는 대중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이러한 유혹은 기업 입장에선 더 뿌리치기 어려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잘 아는 어떤 게임이 그동안 DDA를 비밀리에 사용중이었음이 공개된다면 큰 파장을 불러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
마무리지으며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근 십 여년간 믿기지 않는 속도로 게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더 이상 게임이 대중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적이고 힙스터스러운 생각도 품게 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곧 게임이라는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법일까요?
단순히 사람들이 게임에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돈을 소비해서 게임 산업 규모가 이전보다 더 커진다면,
그게 곧 게임의 발전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게임을 소비하는 개인의 입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게임의 발전이란
단순히 '대중화' 가 아닌, 문화적 가치로써의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게임이 대중화된다면 이는 수입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기업은 문화적 가치같은 것보다도 대중화와 수익성을 1순위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더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문화적 가치이며, 대중화가 곧 문화적 가치의 상승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의 대중화는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많은 문화적 가치를 창출해 내었습니다.
비디오 게임의 대중화가 MIT의 골방에서 만들어진 스페이스 워(Spacewar)에서 그쳤더라면,
아마 제가 이 글을 쓰는 일도,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비디오 게임을 대중화시킨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 플레이어들, 그리고 EA와 같은 거대 게임 기업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설사 그 목적이 게임이라는 문화의 발전이었던, 강남에 빌딩을 한 채 더 세우려는 것이었던 간에, 그들로 인해 게임 개발자의 꿈을 꾸게 되고, 또 게임이라는 즐거움을 접하게 된 저로서는 진심으로 많은 감사함을 느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해주세요!
*FPS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총에 맞는 범위를 계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보이지 않는 오브젝트. 히트박스가 클 수록 플레이어는 총에 맞기 더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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